큰 기름부음의 분량

에베소서 4:7~10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 하나님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표현한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이는 오늘 본문 에베소서 4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온전한 코이노니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왜 성령 하나님이 가장 먼저 언급될까요? 지혜와 계시의 영,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아니면,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2천년 전 십자가 형을 받았던 한 유대 청년을 성육신 하신 하나님으로 믿으며 구원자로 고백하는 믿음은, 오직 성령님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증거합니다. 성령으로 선포된 그의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찔렀고, 그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은 후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 답합니다. 성령님은 성도인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의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 역시 좁은 의미로는 성령의 은사, 보다 넓게는 성령 하나님 그 분 자체를 뜻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복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하게 하십니다. 죽어서야 갈 것 같은 하나님의 나라가, 성령님의 운행하심 속에서 오늘도 실현되는 것입니다.
구원과 성령 침례
성령님은 우리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원의 사건과 성령 침례가 서로 다른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도록 역사하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바로 성령님이시나, 성령님 안에 푹 잠기어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성령님께 잠식당하는 ‘성령 침례’는 다른 사건입니다. 이는 침례가 곧 구원이 아님과도 같습니다. 거듭난 성도로서 주님께서 명하신 침례를 꼭 행해야 하나, 이 행위 자체가 구원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침례는 그리스도의 새 생명에 동참한 자가 되어 교회 공동체로서의 신앙 고백과 공포를 의미하지, 구원을 얻을 수 방법은 아닙니다. 성령 침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로 거듭나게 하심과 성령의 충만함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마치 구원받은 한 사람이 침례를 통해 교회의 일원으로 비밀한 능력을 공유받듯, 우리는 성령의 침례를 통해 주님의 힘으로 충만케 됩니다. 방언으로 영의 일들을 기도하고 예언하며 치유할 뿐 아니라, 우리 내면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충성의 열매들이 맺어집니다. 성령님의 은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능력 있게 하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또한 성령님 그 분이, 우리의 가장 소중한 선물 되십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사역 – 성령을 보내심
7절의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주신 은혜에 이어, 8~10절은 예수님께서 위로 올라가셨음과 또한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일을 말합니다. 이는 주님의 승천 이후 사역을 의미합니다. 본문과 비슷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요한복음 14장을 봅시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혼란스러워 합니다. 이전처럼 주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건지, 아님 떠나시겠다는 건지 헷갈려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주시겠다 말하고 계십니다.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또한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가 우리와 함께함을 기억합시다. 주님의 마음에는 성령으로 하나 될 우리로 인한 기쁨이 가득하셨습니다.
믿음의 분량의 확장
7절의 ‘분량대로’의 헬라어를 직역하면, ‘알맞게 측정된 것에 따라’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측정하시고, 그에 맞게 부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재시는 두가지 사이즈(size)가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12장은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재시고, 또한 우리의 믿음을 넓혀 주십니다. 여러 차례 부흥을 경험했던 저에게, 믿음이란 특별히 소중한 주님의 선물입니다. 제 삶의 경험을 비롯해서 이제까지 보아온 부흥의 사람들의 공통점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상황의 어려움과 한계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믿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믿음으로 발을 떼고 전진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움직이십니다. 주님의 살아계심을 더욱 드러내도록, 큰 믿음이 부어 지길 구합시다. 우리의 계산과 판단을 초월하여 주께서 역사하시도록, 더 큰 믿음으로 우리가 넓혀지길 축원합니다.
사랑의 분량의 확장
두 번째는 사랑의 분량입니다. 은사와 직분에 대해 말하던 고린도전서 12장은 마지막에 이르러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도전합니다.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리고 시작되는 13장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주님은 우리가 더 많이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더 깊게 사랑하길 도전하십니다. 혹시, 곁에 사랑하기에 어려운 자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구할 때, 우리의 사랑의 분량을 확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선물을 더 풍성하게 누리길 축복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넓어지고 또 넓어져서, 주님의 풍성함이 우리를 가득 채우고 우리 삶의 주변으로 흘러가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