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됨 2

2019-3-31

에베소서 4:3~6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라. 

 

섭리적 인생의 은혜

형제들에 의해 먼 이방 땅의 종으로 팔려갔던 요셉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아직 어렸던 소년의 가슴에 고통과 원망이 사무쳤을 법도 한데, 요셉은 훗날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큰 구원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실패한 듯 하지만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었던 인생의 여정들이 있습니다. 우연히 흘러온 듯 하지만, 주님께서 개입하시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림 안에 우리 삶이 놓이기를 기도합시다. 주님의 섭리적 계획안에 그의 뜻을 이루는 인생이, 우리가 구할 진정한 축복의 삶일 것입니다.

 

코이노니아의 하나됨을 지키라

오늘 본문이 말하는 하나 됨의 타당성과 그 이유는 또한 우리가 하나 됨으로 지켜내야 할 요소와 덕목들이기도 합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힘써 지킬 첫 번째 하나 됨은 코이노니아입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이미 하나 된 자들입니다. 한 영으로 몸을 이루었기에, 서로를 향한 성령의 감동들이 흘러갑니다. 때로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으나 셀 가족들을 위한 긴급한 중보 기도가 나왔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마치 한 몸 안에서 핏줄로 서로 연결된 것처럼, 주님은 우리로 하나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코이노니아입니다. 우리는 코이노니아의 하나 됨, 곧 교회의 하나 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몸이 찢어지는 것을 아파하십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사람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로 묶으신 성령의 감동과 인간적인 생각들이 대치되기 시작할 때, 분열이 틈타게 됩니다. 작은 일 하나라도 사람의 실속을 챙기기 위함이 아닌, 성령의 뜻을 따라 행할 수 있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한 영안에서 교회가 하나되도록 사수합시다.

 

오직 예수를 지키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두 번째로 우리는 ‘오직 예수’를 지켜야 합니다. 지난 시간, 예수님만이 우리의 기초 되심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 외에 또 다른 구원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너무나 당연한 듯한 이 말이, 이 시대에 조롱 받고 있습니다. 세상은 예수님만이 진리라고 말하는 우리의 믿음을 폭압적인 독선이라 비난합니다. 문화와 예술과 사상이라 말하면서, 사실 예수의 마음과 진리를 교묘하게 꺾어 버리는 일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말씀보다 높아진 모든 생각에서 우리의 마음이 지켜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뱀의 지혜처럼, 머리 되신 예수님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유일신 사상을 지키라

세 번째는 유일신 사상입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함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도록 하는 미혹의 소리들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변화 산에 나타났던 모세와 엘리야를 생각해 봅시다. 이 두 사람은 구약 시대에 유일신 사상을 회복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400년의 세월동안 애굽의 종 노릇을 하며 여호와를 잊었던 이스라엘에게, 모세는 참 신이 누구인지 드러냈습니다. 엘리야 시대도 동일합니다.

바알이 하나님인지 여호와가 하나님인지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에게, 엘리야는 하늘에서부터 제단으로 불을 내려 누가 참 하나님인지 온 이스라엘이 보게 했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를 시작하신 분은 오직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됨을 지켜야 하는 당위성우리가 힘써 하나 됨을 외치고 지켜나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기억합시다. 삼위 하나님께서 한 분 하나님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는 순간에도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시며, 완전한 코이노니아로 존재하심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요한복음 17장의 기도에서도 코이노니아로 존재하셨음을 말씀하십니다. 한 분 하나님처럼, 우리도 하나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존재 방식인 코이노니아 속에서 우리도 하나 됨을 경험하고 누리길 원하십니다.

 

참된 사귐, 코이노니아의 세 가지 목적과 결과

하나님의 코이노니아, 그리스도인의 참된 사귐에는 세 가지 목적과 결과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코이노니아를 통해 참 생명의 공통분모를 찾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그 안에서 하나 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고 끝나는 차원이 아닌, 죄의 자리에서 빛으로 전진하게 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들이 서로 그 생명을 나눌 때, 코이노니아 속에서 공유된 생명이 더욱 충만해집니다. 주님의 생수가 서로에게 흘러가며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인을 성숙하게 합니다. 우리의 공통분모들이 더욱 분명해지고, 그래서 숨어있던 비진리들이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갈 때 우리는 또한 성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누리는 코인노니아의 진정한 목적이며 결과입니다. 

 

하나 됨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두 가지 방법 – 회개, 용서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 됨을 회복하며 또한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 첫 번째 방법으로 회개의 삶이 중요합니다. 나의 생명과 삶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고백한 이후, 우리는 계속해서 내 뜻대로 걸어가려는 발걸음을 주님께로 돌이키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의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란 예수님의 말씀이 이러한 회개의 삶을 의미합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 우리를 더럽히는 죄들을 계속해서 씻어내는 작업들을 잊지 맙시다. 두 번째는 형제와의 화목에 대함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하나님 앞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곁의 형제들과는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땅의 교회가 약해진 이유 중 하나도 그러합니다. 각자의 뜻을 주장하고 서로의 수치를 드러내느라, 머리되신 주님의 이름을 보호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시즌, 형제들을 용서하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용납과 담당함을 기억합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시고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듯이, 우리 역시 하나 된 자들을 용서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벽들이 무너지고 온전한 하나 됨의 은혜를 누리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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