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르심

2019-3-10

에베소서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신학과 신앙

창세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과 그 신비를 말하던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 들어서며 이제까지 나누었던 이 모든 하늘의 일들을 어떻게 우리의 삶과 실제적으로 연결시키며 살아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주어진 정체성과 부르심 등 교회의 신학이 3장까지의 중심이었다면, 에베소서 4장부터는 이러한 신학을 이 땅에서 살아내는 신앙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집니다. 바울은 이 전환점의 시작에서, ‘부르심’에 대해 다시 말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부어지지 않고는 깨달을 수 없는 비밀한 이야기들이 삶의 실재가 되기 위해, 다시 한번 ‘부르심’의 의미와 가치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갇힌 내가” - 첫째, 주님과의 동행

새로운 전환점에 들어선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대목에 주목하려 합니다. 먼저는 ‘주 안에서 갇힌 내가’와 이어지는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란 어구 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해 ‘주 안에서 갇혔다’라고 말합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옥고를 치르는 중에도 이 일이 마귀의 일이라 말하거나 그 곤경 자체를 대적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주님 안에 있다고 합니다. 이 대목 속에 우리가 새겨야 할 세가지 교훈이 심겨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허락하심 안에서 받는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과의 동행’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며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켰던 바울이 옥에 갇히자, 교회와 성도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며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거나 바울의 믿음의 여정을 실패라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바울은 교회들을 안심시키며 말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겪는 핍박은 우리의 영광이다.” 우리는 종종 고난을 무엇인가 잘못되어 발생한 문제나 실패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리석음이나 욕심에서 비롯된 우매한 고생이 아니라면,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여정일 수 있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물을 때 주께서 ‘내가 여전히 너와 함께 있다.’고 답하신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시간을 살아내야 합니다. 어려움과 곤경에 놓인 상황속에서도 주님께서 바로 그 자리, 그 순간에 여전히 함께 하고 계신지에 집중한다면, 주와의 동행을 결코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확장시키시며 우리 삶의 지경을 더 넓히심을 믿길 바랍니다. 고난의 날에 주께서 여전히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면, 원수의 참소를 뒤로하고 당당하게 그 길을 걸어가길 축원합니다.

  

“주 안에서 갇힌 내가” - 둘째, 값 지불과 순종

두 번째로 바울은 주님의 나라를 위한 값지불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겠다고 말하면서, 값지불은 전혀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의 삶에는 고난이 없으며, 그래서 헌신과 순종의 아무런 값 지불 없이도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었다고 자랑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나라의 방법이 아닙니다. 바울은 성경 곳곳에서 십자가의 삶에 대하여 말하며 그의 삶 속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 값 지불이 있었음을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주님의 나라를 위해 닥쳐올 고난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값 지불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사도행전 21장에서 바울은 그가 잡힐 것을 염려하여 예루살렘으로 갈 것을 만류하는 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주 안에서 갇힌 내가” - 셋째, 선한 싸움의 투쟁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자들에게도 고난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인의 투쟁의 삶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가 부르심을 이루어가는 여정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며 성전과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뜻을 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느헤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바사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성벽 재건이 가능하도록 물질과 사람도 붙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여정이 마냥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처럼 느헤미야를 끝까지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의 안식은 영원한 나라에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때 까지, 끝까지 투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삶에 선한 싸움이 있음을 이상히 여기지 않길 바랍니다. 육적 편안함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빙자하지 않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싸워 이기는 자들로 가나안에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 스스로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말할 정도로 크고 강해 보이는 민족들과 전쟁하여 땅을 취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투쟁을 피하지 맙시다. 우리의 삶에 선한 싸움이 계속될 때, 영원한 나라가 날마다 경험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 끝까지 달려갈 능력과 힘

바울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이는 주님과 동행하는 여정이며 주님께 굴복함이며 주님의 나라를 위한 값지불이자 그를 위해 끝까지 싸울 투쟁의 정신과 마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1절의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부르심을 살아내라 도전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애쓰고 인내하며 힘써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르심 때문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부르심이 상실된다면, 이 땅에서의 순간들은 그저 무료한 일상이 될 것입니다. 모든 안일함과 두려움을 뒤로 하고, 부르심을 감당하는 투쟁의 삶을 살아냅시다. 주님은 부르심을 살아내고자 하는 자들에게 그를 감당할 힘을 주시며 세상을 넉넉히 이길 기쁨을 경험케 하십니다. 에베소서가 말하는 세 가지 부르심 –구원, 온전한 교회, 하나님 나라에베소서 1~3장은 하나님의 세 가지 경륜에 대해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세 가지 부르심과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먼저, 은혜의 경륜, 곧 구원의 부르심을 기억합시다. 이는 각 사람을 택하여 구원하사 한 부르심을 함께 이룰 공동체를 이루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비밀의 경륜입니다. 이는 에클레시아, 곧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부르심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오직 교회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옮기는 천국 열쇠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교회를 통해, 하늘이 이 땅에 개입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지막 세 번째 부르심, 하나님 나라로의 부르심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크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선 곳마다, 성도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통치와 다스림의 선포자이자 그 통로입니다. 에베소서가 말하는 우리의 부르심이 날마다 살아내지길 축복합니다. 부르심의 길을 걸어가며 주님의 크고 놀라우심을 우리의 삶에 담아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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