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다리는 것


시편27편

4절_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14절_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여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것

저는 열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 여러 계획들을 세우고 고민하며 전략을 짭니다. 이 시즌, 그런 저에게 주께서 주신 음성이 있습니다. ‘나를 기다려라.’ 때로 우리는 예수님을 위한 일을 행한다고 하면서, 정작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을 잃곤 합니다. 마르다의 분주함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놓치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섬기기 위해 많은 일을 벌이며 마음이 바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우리에게 주님의 발 앞에 앉아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이 그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우리의 많은 섬김들 속에서 주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일은 과연 우리가 얼마나 주님께 집중하고 있는가 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도록 기다리는 믿음

오늘 본문인 시편 27편은 4절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이 바라는 한 가지 일은 베다니 마리아의 마음과 동일합니다. 그가 평생 여호와의 집에 거하길 구하는 것은 주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편 27편 전체를 한 구절로 요약한다면, 4절이 아닌 14절일 것입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다윗은 자신의 갈망을 고백한 후,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기다릴 것을 말했습니다. 실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나의 판단을 내려놓고 결정을 멈출 수 있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종종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기다림을 오역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림은 사람을 기다림과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준비되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 앞에서 준비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보냅니다. 나의 계획에 따라 내가 세운 일정에 하나님이 따라와 주길 기대하며 앞서 나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기다림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 정도로 느껴지고 있다면, 이는 주님보다 나를 더 소중하고 높이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주님을 기다리지 않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이 늦추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길 거부하고 나의 힘으로 행하려 할 때 주님의 역사가 멈추어 집니다. 오늘, 주님은 교회가 기다릴 때라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삶을 가속시키길 원한다. 너를 통해 돌파가 일어나게 하고 싶다. 그러나 너는 기다리지 못하고 나보다 먼저 달려 나가려 한다. 너의 힘으로 스스로 해내려 하는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가지고 나오라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연약함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함은 우리의 깨어짐과 한계를 통해 드러납니다. 나의 은사, 지혜, 재능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가장 큰 능력입니다.

사울이 잃어버린 언약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나의 힘이 아닌 그의 힘을 의지함을 말합니다. 그래서 인내하지 못함은 중대한 죄입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자는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자이며 믿음이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저항하는 영으로 연결됩니다. 사무엘상 13장에서 드러나는 사울의 마음을 봅시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길갈에 머무르며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막강한 병력을 이끌고 진을 쳤습니다. 이를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숨거나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남아있던 사람들마저 하나 둘씩 흩어지기 시작하자 사울은 다급한 마음에 사무엘이 와서 드려야 할 제사를 자신의 손으로 행하였습니다. 그 때, 사무엘이 도착합니다. 그는 사울을 꾸짖으며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짓을 하였소! 왕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소. 여호와께서는 당신과 당신의 자손들을 영원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을 작정이었소.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는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백성을 다스릴 왕으로 세울 것이오.” 다윗이 받은 약속이 사울 위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기다리지 못함이 하나님이 주시려고 했던 축복을 잃게 했습니다. 시편 27편 본문을 봅시다. 다윗은 인생 말미에 어려움을 당하던 때, 이 노래를 썼습니다. 주변국의 왕들이 다윗을 공격하려 했고, 다윗의 신하들마저 두려움의 말들을 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과 같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우리는 더욱 여호와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울은 믿음으로 여호와를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적들이 몰려오고 나를 지키리라 여겼던 자들이 도망가자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어둠이 짙어지고 죄가 만연해질 때,,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바라보고 기대했던 그의 마음이 드러났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구하는 우리의 열정 속에, 야망이나 두려움이 숨어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봅시다. 우리에게는 원수를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연약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께서 우리로 강하게 하십니다. 이제, 주님보다 앞서나가지 않겠다고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이는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함을 말합니다. 마지막 때, 원수는 교회를 향해 분노하며 칼을 겨누어 올 것입니다. 우리가 거할 곳이 어디입니까? 주님의 날개 아래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주님의 처소가 아닌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 머무르며 그의 음성을 기다릴 줄 모른다면, 주님의 보호와 능력 밖으로 벗어나 세상에 휩쓸리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자리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예레미야 23장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이 임하지 않은 채로 예언한 자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는 마지막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현상입니다. 자신의 비전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그릇되게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내 안에 그려진 환상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보내지 않았으나 달려가는 자들,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사역하는 자들.. 이러한 시대에 이런 상황 속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과 연결되지 못한 채, 거짓된 평안을 주절거리는 소리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곁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과 눈을 마주치고 사랑안에 거하며 기다리는 법을 배우라 도전하십니다. 다윗처럼 주님을 기다릴 수 있는 자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가속화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의 마음을 아는 자라야, 주께서 전진을 명하실 때 거침없이 달려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고자 머무릅시다. 주님의 음성을 사모합시다. 하나님의 마음을 선포할 새로운 선두주자 세대들이 한국 땅에 서길 믿음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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