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양면성

에베소서 2:4~10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산 자의 첫 번째 특징과 모습 –구원의 확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에베소서 2장을 열며, 우리는 죽은 자의 모습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내가 원하고 판단하는 바를 따라 사는, 육에 속한 자들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요구에 맞추어 이리 저리 끌려다니며, 실상 종 노릇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러한 진노의 자녀들에서 하늘 아버지의 복된 자녀로 구별되었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산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으로 인해 거듭난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초이자 근본이 되는 구원의 믿음에 대해 혼란이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교회가 세계에서 주목하는 부흥을 경험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해 갈 때, 이 기본 진리가 잘 정립되지 못했습니다. 구원을 학습하여 취할 수 있는 이론으로 말하는 ‘구원파’의 등장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의 삶과 성령충만한 삶을 별개로 보는 성도들이 생겼고, 교회는 그러한 속임에서 성도들을 깨우기 위해 구원의 행위적 모습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배경과 상황 속에서, 구원의 반석 위에 바로 서지 못한 자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이제, 구원의 말씀을 분명히 깨닫고 이 복음을 널리 전하길 축원합니다. 구원의 믿음이 흔들린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절대적 조건과 필연적 결과 -믿음과 순종> 천국의 문을 지키는 천사들 앞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그 문을 통과하는 조건으로, 정직하게 살아온 삶의 순간들을 말하면 될까요? 또는 어려운 자들을 도우며 교회를 위해 봉헌한 일들? 아니면 오랜 시간 기도하고 금식한 삶입니까? 그 어느 것도,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리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는 오직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와 그를 믿는 믿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 바울은 위대한 하나님의 일들을 섬기며 신비한 기도의 능력들을 체험하고도, 그의 속에서 결코 끊어지지 않는 죄의 본성으로 인해 탄식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들을 더욱 노련하게 꾸밀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의 속에는 치졸한 시기와 질투와 분냄과 이기심과 정욕과 교만이 순간마다 자리할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의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십자가와 믿음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이 진리로 인해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 어떤 행위도, 우리를 천국에 들어갈 의인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분명한 구원의 진리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로 인해 모든 죄가 이미 용서받았기에 이후로는 죄를 짓는 것에 대해 고민하거나 가책을 받지도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거룩하게 사는 삶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실망하고 우리의 믿음을 조롱하는 이유 중 하나에 이러한 오류가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진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구원의 절대적 조건이며, 순종과 변화는 구원의 필연적 결과이다.” 믿음으로 인하여 거듭난 자들은 죄와의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주께서 모든 죄를 사하시는 구원자로 내 안에 좌정하시면, 주님의 생명이 내 안에 역사하여 우리는 어둠에 속한 것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야고보서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위한 행위를 요구하는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의 생명력은 순종과 그로 인한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죽었던 우리를 살린 생명은, 생명이기에 살아 역사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순종으로 변화를 가져오는 생명의 증거들을 찾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생명력이 없는 자들의 세 가지 이유>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가 의롭게 되는 단 하나의 방법, 구원의 길은 오직 십자가와 믿음뿐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로 인해 우리에게 생기는 의문과 갈등이 있습니다. ‘산 자’라 하나, ‘죽은 자’와 같이 사는 이들에 대함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모습과는 너무 멀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네 모습의 사람들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사실, 교회 안에는 진정 거듭난 ‘산 자’들만 있지 않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고백하지 않았지만, 교회를 다녀보고 있는 ‘죽은 자’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잠든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면서, 더 이상 주님과 교통하지 않고 그 영이 잠자는 상태가 되어버린 자들입니다. 이들이 악한 날이 올 때, ‘배도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잠든 자’들은 이미 바벨론의 문화와 가치 속에서 살고 있기에, 배도의 상황이 오면 떠밀려 가게 됩니다. 이 네 종류의 영적 상황들은, 우리가 앞서 말한 갈등의 원인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말하나 구원의 생명이 역사하지 않는 자들은, 사실 아직 거듭나지 않은 자일 수 있습니다. 흔히, 아내나 남편을 따라 종교 활동을 하듯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지 않았으나, 감동적인 노래와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으러 교회를 ‘다니는’ 자들입니다. 때로 집사나 교사의 직분을 맡기도 하지만, 거듭나지 않은 채 본인이나 주변의 상황에 따라 적절히 반응하여 교회 안에서 종교적, 문화적 활동을 하는 것 뿐 입니다. 다음으로는 변질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분명히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열정이 식어지면서 종교인이 되어버립니다. 빗나간 성경적 가르침 때문일 수도 있고, 그릇된 훈련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자리로 반드시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은 은혜가 상실되어서입니다. 이들이 영적 가사상태에 빠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교회의 문화에 익숙할 뿐, 실상 바벨론의 소리를 따라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공중 권세 잡은 마귀에게 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 안에 거하는 삶 –기도와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성령충만의 삶> 생명 안에 거하며, 생명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성경은 이를 위해 기도와 말씀의 삶을 반복적으로 도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임한 생명은, 기도와 말씀으로 호흡합니다. 생명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방법이 기도와 말씀에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봅시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으로 기도를 말씀하셨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삶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킵니다. 죽었던 자에서 산 자 되게 한 생명으로 우리가 가득 차게 합니다. 이것이 곧 성령충만입니다. 우리는 살아 역사하는 주님의 말씀과 옛사람을 죽이는 기도로 인해 성령충만 해집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님 안에 온전히 거합시다. 성령충만 할 때, 우리의 믿음이 거룩한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님은 지혜와 지식과 병 고침과 예언과 영들의 분별과 방언 뿐 아니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생명의 증거들로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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