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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에베소서 1: 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성도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정체성, Sonship> 하나님의 아들됨. 이는 성도의 삶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시킬 하늘 나라의 정체성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죄에 매여 종 노릇 하던 삶의 습관들이 여전히 우리를 따라다니며, 이제 새롭게 주어진 ‘아들’의 정체성보다 ‘죄인’이었던 과거의 정체성 안에 자신을 두도록 끌어 당긴다는 것입니다. 이미 학습되어 버린 진화론적 사고체계 안에서, 주님과 보좌에 함께 앉는 ‘아들’의 정체성으로 굳건히 서기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Sonship을 주제로 강의를 할 때 여러 사람에게 듣는 피드백 중 하나가, 이 말씀이 성경적이라는 점과 분명한 진리임이 마음으로는 믿어지지만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머리만 지끈거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담의 범죄 이후 무너져버린 우리의 자아상과 패배감이 내면에서부터 작동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화론에 익숙해진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태초의 사람, 아담과 이브를 마치 원시인의 모습 정도로 머릿속에 그리곤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 아담은, 육을 가졌으나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만큼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에 충만할 뿐 아니라 땅을 다스리라는 특별한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까지 사람은 10세기 동안 살면서 땅을 경영하며 다스리던 놀라운 하나님의 형상들이었습니다. 오늘 에베소서 본문이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정체성을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정복하고 다스리고 회복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씨가 심겨진,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성도의 정체성 -비교할 수 영광을 나눌 하나님의 아들> 지난 몇 주간 나누었던 하나님의 아들됨, Sonship을 롬8:18~22 말씀으로 마무리 하려 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18절을 봅니다. 바울은 현재의 고난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1세기 초대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큰 핍박을 당하며 사회적으로나 영적으로 압박을 견뎌야 했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단호하게 그들의 모든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것이라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며 생각난 한 성도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 두 세가지를 지닌채 매일을 감당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기도사역을 하러 갔을 때, 그 분은 밝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이깟 병들은 길어야 몇 십년일 뿐입니다. 이 시간이 다 지나가고 나면,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서 부활의 영광을 보게 되겠지요.” 참으로, 우리는 죄의 바이러스에 오염된 육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실제적인 질병의 고통들 뿐 아니라 거룩함을 상실케하는 죄의 고통들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은 길어야 10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 후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지금의 한계를 벗어버린 부활의 몸과 영원한 나라입니다. 바울은 그를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우리가 맞이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땅에 매일 수 없는 존재,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가 예정함을 입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영광의 약속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교회의 정체성 –정복하고 다스리고 회복하는 하나님의 아들들> 이어지는 롬8:19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오늘 본문 엡1:5의 아들들과 같은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피조물들도 나타나기를 고대한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삼으신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 모인 ‘아들들’. 이것이 교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제가 잊지 못하는 주님의 음성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급작스럽게 이 교회를 시작해야 하던 때였습니다. 당장 다음주부터 어디서 모여서 어떻게 예배를 해야할까 고민스러운 밤이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마음을 묻는 제게 문득, ‘이 땅의 교회들이 치매에 걸린 듯, 정체성을 잊었다.’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에서부터 터져 나왔던 마태복음 16장의 교회에 대한 선포를 기억해야 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는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을 들어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청중들의 박수를 따라가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교회가 당신의 것이며, 당신께 속해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공동체, 대적의 문을 취하는 자들이라 소개하셨습니다. 창세기 말씀처럼, 우리, 곧 교회는 정복하고 다스리고 회복시키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이 땅의 소망이 참으로 교회에 있습니다. 세상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교회에게 주어졌습니다. 교회만이 이 땅의 분열과 아픔과 고통에 답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바울은 이 위대한 교회의 등장을 피조물들도 고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오직 아들들에게만 맡겨진 신성한 일들을 행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풀어집니다. 하늘을 움직이는 열쇠가, 교회에게 주어졌습니다.

<위대한 교회, 종 노릇하는 피조물들을 해방시키는 이 땅의 하나님들> 교회가 잊었던 정체성을 회복할 때, 빼앗겨 버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회복될 것입니다. 신성이 나누어진 하나님의 아들들이 설 때, 피조물들도 고대하던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아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며, 또한 소유하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눌 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복하고 다스리고 회복하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해야 하는 유일한 이 땅의 소망인 것입니다. 이 위대한 하늘의 정체성 안에 굳건히 서서, 이 나라에 생기를 대언합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였던 노예제도를 폐지시킨 윌리엄 윌버포스처럼, 교회는 세상이 알지못하는 것들을 보고, 세상이 풀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합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며, 또한 세상의 빛입니다. 이 위대한 정체성과 그로 인한 신성한 직무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나라의 모든 상황 가운데 생기를 대언합시다. 교회가 기도할 때, 주님의 생기가 불어와 마른 뼈가 살아나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기적을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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