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을 밝히사 6

2018-5-20

 

 

에베소서 1: 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성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힘과 권세와 능력>
에베소서 본문의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 마음의 눈을 밝히사 교회로 더 분명히 보게 하는 세 가지, 곧 부르심의 소망과 영광의 풍성함, 그리고 오늘부터 함께 묵상할 ‘그가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기를 기도합니다. 죽어서야 갈 막연한 천당이 아닌 부르심 안에 있는 분명한 소망을 발견하고, 또한 흔들림 없이 그 길을 전진하게 하는 영원한 영광을 안다면, 이제 교회는 주님의 위대한 능력이 우리 안에 이미 임하여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나르는 성도들을 향해 분노하며 교묘하고 끈질기게 교회를 공격하는 원수들에 맞서, 그 모든 악한 속임과 계략들을 끊어내는 능력으로 끝까지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써내려갈 당시 에베소 교회도 그 치열한 전쟁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여신의 신전이 있던 에베소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어둠과 씨름하며 믿음을 지켜내야 했습니다. 120개의 기둥으로 세워진 100m도 훌쩍 넘는 거대한 신전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며, 함께 모여 예배할 작은 처소조차 없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을 주눅 들게 했습니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종교에 빠져, 모든 이가 동의하는 쾌락의 문화를 스스로 거절하고 갖은 조롱과 핍박을 받다가 죽어가는 자들. 그들이 1세기 성도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세상과 맞서고 있는 에베소 교회가 진리 안에 굳세게 섬으로 끝까지 승리하도록 기도하며 격려합니다. 태초에 역사를 시작하신 창조주께서 이 땅에 속하지 않은 부르심의 소망과 영광을 교회에게 주셨으며, 만물을 주관하는 예수께서 능력으로 함께 하신다고 선포합니다. 바벨론의 위협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둠을 깨부수며 이기는 이 빛의 능력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만물을 붙드는 근원적인 힘, 이스쿠오스 -힘>
주님은 이 땅에서 하늘을 움직이는 그의 몸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불법적인 사탄의 나라를 박살내는 권세가 주님의 신부된 교회에게 주어졌습니다. 본문의 바울은 교회 위에 임한 이 힘을 세 단어로 표현합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 ‘힘’을 봅시다. 주로 Might나 Force로 번역되는 이 ‘힘’의 원어는 ‘이스쿠오스’입니다. 이는 엡6:10의 ‘힘’, 벧전 4:11의 ‘힘’, 계18:2의 ‘힘’과 같은 단어로, 하나님의 본성과 존재 방식의 모습 중 하나인 ‘가장 근본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주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힘의 본체 되십니다. 만물을 붙드시고 우주를 경영하는 힘, 눈에 보이는 세상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의 모든 질서를 지켜내는 힘이 우리 하나님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신의 본성에 속하는 이스쿠오스가 우리에게도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그리고 어떻게 모든 에너지의 근본이 되는 이 힘이 우리 안에서 작동하게 될까요? 이스쿠오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그래서 주님과 친밀감 안에 동행할 때 활성화 됩니다. 그렇기에 이스쿠오스의 능력은 또한 거룩함에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할 때, 주님과 더 깊은 친밀감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이스쿠오스의 힘으로 사역을 하시던 한 분을 기억합니다. 바로, 예수원을 세우신 대천덕 신부님이십니다. 그 분은 누구보다 성경적으로 생각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어떤 사역을 하시든 주님과의 깊은 친밀감이 흘러 나왔고, 주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축사 사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은사 사역들이 큰 소리와 야단스러운 행동들로 행해지곤 했을 때, 대천덕 신부님은 목소리를 높이거나 요란한 몸짓 없이도 이스쿠오스의 능력으로 귀신들을 잠잠케 하고 주님의 평강을 풀어내셨습니다. 거룩과 그로 인한 친밀감으로 역사하는 이스쿠오스의 능력이 이 교회 위에도 더욱 부어지길 기도합시다. 세상과 나를 구별하는 거룩함과 그로 날마다 깊어가는 주님과의 친밀감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이스쿠오스의 간증들이 있길 축원합니다.  


<위임되어 부여된 힘, 크라토스 -권세>
두 번째는 ‘위력’입니다. 영어로는 대개 ‘Authority’로 번역되는 말로, 원어는 크라토스, 가끔씩 엑소시아와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합니다. 행19:20을 봅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기록된 말씀인 로고스 위에 힘이 임하자, 말씀이 생동하여 퍼져나가게 됩니다. 다른 율법사들이 로고스를 읽을 때와는 다르게 바울이 로고스를 증거하자, 말씀 위에 역사하는 힘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크라토스는 이와 같이 위임되어 부여된 힘을 의미합니다. 우리 말로는 권위나 권세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때로 주님께서는 어떤 사건과 상황들 속에서 특별한 권세와 권위를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이는, 그 사건이나 상황이 종결되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위임하여 역사하게 하시는 권세. 이것이 크라토스입니다. 그렇기에 크라토스는 말씀을 확신함으로 주장할 때 역사하게 됩니다. 또한 믿음과 분명한 정체성으로 도전할 때 역사합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나는 병을 고쳐 본 적이 없습니다. 내게 그런 은사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이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진리임을 확신하기에,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순종할 때 권세와 권위가 임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정체성을 앎으로, 믿음으로 도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연약함이 아닌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서 새롭게 주어진 정체성으로 설 때, 주님은 권세와 권위를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실질적으로 충돌하고 파괴하는 힘, 뒤나미스 -능력>
마지막은 ‘능력’, 바로 뒤나미스입니다. 이는 물리적, 실제적으로 충돌하고 파괴하는 힘으로,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이나마이트가 발명되고 그 명칭을 지을 때, 여기서 어원을 따오기도 했습니다. 행1:8을 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때 사용된 단어 ‘권능’이 뒤나미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전진할 때 일어나는 많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케 하는 실제적 능력, 뒤나미스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사탄의 방해와 공격들을 파괴할 권능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기억할 것은, 뒤나미스는 현장의 능력이란 점입니다. 종종 뒤나미스가 이스쿠오스나 크라토스와 함께 임하기도 합니다. 이미 역사하고 있는 이스쿠오스의 힘, 크라토스의 권세가 흘러가며, 능력으로 뒤나미스가 함께 풀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하게 뒤나미스가 역사하는 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현장에서입니다. 뒤나미스는 하나님의 나라가 증거되기 위해 사탄의 거짓들을 파괴하며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뒤나미스는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며 병자들을 치유하고 귀신들을 내어 쫓을 때 강력하게 드러나며, 우리 안에서 성장합니다. 이 한 주간,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생생하게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는 능력. 어둠과 저주를 끊어내고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는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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