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을 밝히사 3

에베소서 1: 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주와 동행하는 여정, 부르심의 삶>

많은 성도들이 주와 동행하는 삶을 위해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주님과 더 오래 시간을 보내길 소원하며 갈망합니다. 그렇다면, 주와 동행하는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이 땅의 물리적 법칙을 초월하는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하는 것일까요? 또는 온 마음을 감격시키는 감동으로 충만해지는 것일까요? 주와 동행하는 삶의 궁극적인 모습에는 이 모든 것을 넘어, 부르심이 있습니다. 순간적인 감격과 특별한 영적 체험이 지나가고 난 뒤에도, 여전히 우리를 택하여 부르신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부르심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인생을 언젠가 죽어서야 갈 천당을 바라보며 막연히 보내는 허비로 소진하지 않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새로이 열린 하늘의 삶, 창세전에 계획된 부르심의 삶을 주와 함께 살아갑시다. 우리를 택하여 당신의 나라 삼으신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분노하는 원수들의 공격에도 주어진 길을 끝까지 완수하도록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부르심을 상실한 삶의 특징 -첫째, 사울의 인본주의> 종종 하나님께서 택하여 불러내신 목적을 잊고, 부르심을 상실한 채 사는 자들을 봅니다. 성경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르심에서 벗어나거나 부르심을 이루는 삶에 실패한 많은 사람 중 사울 왕과 삼손이 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지자와 사사를 통한 통치 구조에 불만을 품고 이방 민족처럼 전쟁에 능해 보이는 왕들을 구하자, 하나님은 결국 사울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위대해 보였던 그의 삶은 역대상 10장에서 보듯 비참하게 끝을 맺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쫒기다가 스스로 자기 칼 위에 엎드려 죽게 되며, 이후 그의 머리는 다곤의 신전에 달리기도 합니다. 사울의 이 마지막은 부르심을 상실한 삶의 참담함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은 부르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일까요? 그의 삶을 통해 보는, 부르심을 상실한 삶의 현상 첫 번째에 인본주의가 있습니다. 사울은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기보다 사람의 소리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을 하나님 앞에 서는 것보다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무엘상 10장입니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하나님은 사울의 태도에 대해 계속하여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주 앞에 엎드리기보다 이스라엘 앞에서 인정받는 것에만 관심을 둡니다. 부르심을 발견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다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위치에 올라서면 이런 갈등을 겪게 됩니다. 사람의 낯빛을 살피며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습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동기와 에너지가 사람에 있지 않길 축원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나의 행함이 주님이 아닌 사람을 위해 움직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합시다. 사울의 삶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람을 위해 끌려가면서부터, 부르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부르심을 상실한 삶의 특징 –둘째, 삼손의 세속주의> 부르심을 상실한 삶의 특징적인 모습에, 또한 세속주의가 있습니다. 삼손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나귀 턱 뼈로 천 명의 사람들을 죽일만큼 특별한 힘의 능력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들릴라를 만나게 되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의 목적을 잊게 됩니다. 모두가 두려워했던 이스라엘의 사사가 부르심에서 이탈하여, 결국 블레셋 사람들에게 눈이 뽑힌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물론, 사사기 16장에서 보듯 하나님은 삼손의 마지막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수천 명의 블레셋 사람 앞에서 농락거리가 된 채 서있던 삼손은 여호와께 그의 힘이 회복되길 마지막으로 구한 후, 기둥을 무너뜨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지냈던 삼손이 그에게 주어졌던 힘과 능력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의 길을 사수했다면, 이토록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새로운 자랑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르심을 모르는 자들, 또는 부르심에서 벗어난 자들은 인본주의를 삶의 가치에 두고, 결국 세속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삼손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들릴라에게서 벗어나지 못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힘, 그의 부르심을 상실했습니다. 오늘, 바벨론의 멋과 즐거움은 계속하여 우리를 유혹합니다. 차를 바꾸고, 집을 바꾸고, 사역들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세속주의는 세상의 가치로 우리의 삶을 재단하려 합니다. 그렇기에 세속주의에 빠진 자들은 부르심을 살아가는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감사가 아닌 불평으로 내게 주어진 분깃을 등한시 여깁니다. 이 시즌, 가만히 우리 안에 들어와 눈을 뽑아가려하는 세속주의를 발견한다면, 깨어 대적하길 축원합니다. 세상과 구별된 우리에게는 바벨론의 즐거움을 이기는 부르심의 소망이 있습니다.

<부르심의 삶 –바울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삶> 반면 부르심을 이룬 많은 자들 중 사도 바울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인 빌2:12~13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한 뒤 하나님께서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해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값으로 산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극락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천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주어진 부르심을 이루어가는 여정임을 명심합시다. 바울이 그의 드라마틱한 삶을 마칠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쓴 서신, 디모데후서 4장을 봅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부르심을 이루는 여정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 받은 우리는 ‘천당’이 아닌 영원한 그의 나라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주께서 이끄신 나의 자리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는 위대한 퍼즐>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서서 부르심을 성취해 가는 여정, 곧 구원을 이루어가는 주님과의 동행을 누리길 축원합니다. 칼빈과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 열리는 구원의 은혜를 선포한 후, 직업소명설을 말한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저 역시, 이 말씀을 준비하며 직업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직업이란,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을 성취하기 위한 선한 모든 수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머무르고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묻고, 또 점검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주께서 성숙시키기 위해 두신 과정적인 자리에 있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조금 더 종국적인 자리에 있기도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내가 머무르고 있는 곳이 어디이든, 주님의 뜻이 내 삶과 내가 머무른 곳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낼 예배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입니다. 어떤 것은 유독 작아 보이거나 또는 유별난 모양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모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그렇기에 위대한 주님의 퍼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오늘도 살아내길 기도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 곳에서 주와 동행하는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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