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5

에베소서 1: 15~19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 아버지가 우리 안에 거하는 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임마누엘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풍랑을 잠잠케 했던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주님을 만지고, 그의 음성을 들으며, 주와 함께 동행 합시다.

성령 하나님의 사역, 코이노니아 주님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죽어서야 가는 곳이 아니라 오늘도 경험할 수 있는 삶의 일부가 되도록, 우리를 깊은 영적 세계로 부르십니다. 에베소서는 그 시작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합니다. 지난 시간동안 삼위일체 하나님, 특별히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에 대하여 나누었다면, 오늘은 성령 하나님과 코이노니아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성령 하나님을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가족들을 돌보는 어머니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믿지 못할 때 우리를 향한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주시고, 때론 죄의 습관에서 돌이키도록 격려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7장의 고별 설교에서 성령님에 대하여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승천하신 후 보내주실 또 다른 보혜사, 우리 안에 거하시며 또 우리와 함께 하실 성령을 기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적 없는 예수를 메시아라 믿는 것은 성령께서 복음을 증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믿음을 성장시키시고, 치유하시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의 이 모든 사역을 한 마디로 한다면 ‘코이노니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 하나님 나라의 방법, 교회의 능력에 모두 코이노니아로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후13:13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 본문의 ‘성령의 교통하심’이 바로 코이노니아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4장과 17장의 예수님께서 누리셨던 하나님과의 교제가 코이노니아 이기도 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성령님을 부를 때, 예수님께서 답하시는 코이노니아. 아버지께 구할 때 또한 성령께서 임하시는 코이노니아. 우리 안에 예수님이, 우리가 아버지 안에 거함을 알 때 풀어지는 코이노니아의 능력을 더욱 누리길 축원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에게 코이노니아의 비밀이 주어졌습니다.

코이노니아의 의미 –첫째, 사귐과 교제

앞서 말한 듯, 코이노니아는 성경에서 여러 용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여 봅시다. 그 첫째는 ‘사귐’, ‘교제’입니다. 이는 단순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하셨는지, 요한복음 17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코이노니아의 첫 주제에 사랑의 교제와 사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율법을 지키는 종교적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을 갖기 시작할 때, 거룩의 삶이 풍성해집니다. 기도와 예배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기도와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도우십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의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을 갖도록 계속해서 격려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이 사귐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내는 친교와 코이노니아의 경계에 성령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행2:42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여기서 떡이 성찬을 의미한다면, 교제는 코이노니아를 말합니다. 코이노니아가 없을 때, 우리는 억지로 교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분위기를 풀어내느라 셀목자들은 진을 뺍니다. 사람의 모임이 아닌 코이노니아가 풀어지기 위해 성령님이 오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서로를 경험하는 것이 즐거운 사귐으로 풀어집니다. 고전1:9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중 하나가 코이노니아의 교제입니다.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시는 하나님과의 깊은 코이노니아가 풀어지길 축원합니다. 그 코이노니아 안에서 우리 역시 서로 사랑하며 교제할 수 있습니다.

코이노니아의 의미 –둘째, 나눔 성령의 코이노니아가 풀어지는 두 번째 모습에 나눔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실제적 필요가 채워지는 나눔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몸을 풍성케 하는 하나님의 선물, 은사의 나눔이기도 합니다. 성도로서 세상을 살아가며, 삶의 안정감과 풍성함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혹시, 주님이 아닌 물질에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재물을 주인으로 비유하시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삶의 안정의 기반을 오직 주께 둘 수 있도록 씨름하며, 승리하길 축원합니다. 하늘의 아버지는 우리를 공급하시며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코이노니아는 이 하늘의 풍성함을 나눔으로 또한 배가시키는 비밀한 능력입니다. 때로 인생의 어느 한 시기 가운데,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지체들이 셀 안에서 이 풍성한 코이노니아를 경험합니다. 도움을 받는 자나, 돕는 자나 모두 하늘의 아버지 안에서 더 놀라운 돌파를 경험하였다 간증합니다. 코이노니아의 나눔에 있어 또한 기억할 것은 영적인 나눔입니다. 이는 각자의 은사를 통해 몸을 풍성히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와 그 은사를 통해 각 지체들이 어떻게 더욱 하나가 되는지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주님은 모든 이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셀 안에서 우리가 받은 은사들로 서로를 섬기며 나눔으로, 하나님의 선물들을 더욱 계발하고 확장합시다.

코이노니아의 의미 –셋째, 흘려보냄

마지막은 ‘흘려보냄’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를 ‘임파테이션(Impartation)’이라 말하곤 합니다. 바울이 성경 곳곳에서 신령한 것들을 나누어주기 원한다고 말할 때 사용된 단어 ‘코이노니아’가 ‘임파테이션’으로 번역된 것입니다. 종종 치우친 성령 사역을 하는 공동체에서 이 ‘임파테이션’을 오해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은사와 기름부음을 받기 위한 무조건적인 ‘기도 사역’을 임파테이션이라 여깁니다. 이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우리 주님은 욕심과 그로 인한 무질서 안에서 그의 충만함을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의 코이노니아, 주로부터 흘러가는 임파테이션은 세 가지 통로로 우리에게 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어짐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예상과 의지를 초월하여 당신의 때, 당신의 사람에게 기름부어 주십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과 상황에 상관없이 그의 예정하신 뜻을 행하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제도 안에 있는 공동체가 권위를 선포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누군가에게 권위를 선포하는 날, 영적 세계에서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법적으로 선포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수식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안수식은 단순한 행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그를 권위로 세우는 날, 하나님께서도 기름부으십니다. 임파테이션의 마지막 통로는 몸에 속하여 있는 것 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를 봅시다.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절로 과실을 맺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생명체적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와 몸을 이룰 때, 교회에게 부어진 기름부음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도 흘러옵니다. 교회의 부르심이 우리의 삶에서도 회복되며 한 영 안에 굳건히 서게 됩니다. 돌파의 영성이 있는 교회에선 돌파의 영성이 교인들에게 흘러갑니다. 지혜의 영성이 충만한 교회에선 지혜의 기름부음이 성도들에게 임합니다. 이 한 주간, 성령님의 코이노니아 안에서 풍성한 삶을 경험하길 축원합니다. 성령께서 풀어주시는 코이노니아의 능력안에서, 오늘도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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