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2

2018-3-04

 

에베소서 1: 15~19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을 아는 삶 –성령께서 여시는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
2018년 오늘,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식과 이성과 그로인한 합리적 판단이 삶의 전반에 관여하는 이 시대, 우리는 그 이상의 차원에 존재하는 세계에 속해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 나누었던 본문의 기도는, 이러한 놀랍고 새로운 주님의 세계를 더 열어달라는 간구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고, 손으로 만져지는 차원을 넘어서는, 더 깊은 주님의 세계로 들어가길 기도합니다. 그 출발점에 하나님을 아는 일이 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우리에게 행하는 첫 번째 일, 새로운 차원의 믿음의 삶이 열리기 위해 응답되어야 할 첫 요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장의 베드로의 고백을 생각해봅시다.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 말하느냐 물으신 예수님은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기뻐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우리의 신앙고백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당신을 알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별들로 가득한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분을,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깨닫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을 만드시고 인류역사를 끌어오시는 분을 피조물인 우리가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3차원 너머 또 다른 세계가 열렸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초월적인 하나님을 알게 된 우리는 이미 초월적 세계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을 알길 구하는 바울의 기도는 우리 하나님이 3차원에 갇힐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임을, 그리하여 우리가 그의 도우심으로 우주의 창조자이자 주관자를 고백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알아지는 하나님
이제, 우리에게 열린 4차원의 영적 세계가 땅에 있으나 땅을 초월하는 삶의 방식이 되도록, 주님의 더 깊은 세계를 알아가길 축원합니다. 이해와 의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단편적이고 제한적인 3차원의 세상에서, 주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하늘의 문이 우리에게 열렸습니다. 이제, 본문의 하나님을 알길 구하는 기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봅시다. 15절부터 시작되는 기도에 앞서, 바울은 3~14절로 에베소서 전체의 본론만큼 깊고 결론만큼 무거운 내용을 선포합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되기 전 태초의 경륜과 섭리를 이야기하던 바울은, 구원의 감격 안에만 머물러 있는 에베소 교회가 이 비밀을 깨닫기 위해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15절로 시작되는 기도의 배경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와 경영과 섭리를 말하는 3~14절의 내용에서 바울이 분명하고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에베소 서신을 시작하며 바울이 구별하여 인사한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삼위일체 하나님은 새로운 계시였습니다.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이미지는 오직 야훼, 한 분으로 존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반대로 이방인에게는 그리스 신화와 같이, 많은 신들 중 가장 센 한 신의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합니다. 유대교나 이슬람의 신과 구별되는 우리 하나님의 신비. 세 분이나 한 분으로 존재하시는 영광의 코이노니아를 3~14절로 드러냅니다. 서두를 다시 봅시다. 3~6절까지 성부 하나님의 사역, 7~10절까지 성자 하나님의 사역, 11~14절까지가 성령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바울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늘의 경륜과 섭리적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바울은 구원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적 사역의 결과로 정리합니다. 완전하게 세 분이시나 한 분이신 하나님! 그 신비한 코이노니아로 이루어지는 하늘의 경륜과 구속의 역사! 이는 피조물인 사람의 이치나 합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고백하는 믿음이 하늘에서 부어지듯, 믿어져야 하는 신학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지는 않습니다. 종종 기독교인척 하는 이단들이 이런 점을 교묘히 틈타 성도들의 믿음을 흐트러뜨리려 할 때도 있습니다. ‘삼위일체’란 단어를 신학자들이 정리하였다고 해서, 이를 사람이 만들어낸 이론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리며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마태복음 17장의 변화산에서도 들리는 소리입니다. 인류역사의 비밀한 끝을 말하는 요한계시록에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예수님의 지상대명령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떠나 믿음으로 알아지는 하나님입니다. 칼빈은 이를 두고 ‘삼위일체는 믿어야 하는 신학’이라 했습니다. 삼위일체를 두고 많은 비유들이 있습니다. 그 중, H2O가 가장 적합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H2O는 고체인 얼음이기도 하고, 액체인 물이기도 하고, 기체인 수증기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설명은 되지 않겠으나, 삼위일체 하나님도 그런 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를 고백하는 믿음, 이 땅의 이론과 합리로 설명할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주어졌다면, 구원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3차원의 삶 너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계신 세계가 열렸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삶 –3차원적 율법을 넘어 만나는 하나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한 번도 질서와 균형이 깨어진 적 없는 완전한 코이노니아. 우리 하나님의 존재 방식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을 삼으실 계획을 하신 분이십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창조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의 구속 계획을 순종으로 실천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아들이 되도록 죽기까지 복종하사 실현시키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성령님은 아들을 보증하는 분이십니다. 구속의 역사가 오늘도 이루어지도록, 우리에게 아들됨을 확신시켜주시고, 확인하시는 구원의 적용자이자 보증자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를 3차원의 삶에서 자유케 합니다. 이를 알지 못했던 유대인의 삶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율법이었습니다. 의지를 다해, 노력을 다해, 율법을 지켜야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율법에 매인 그들의 삶은 그렇기에 3차원에 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하늘 나라의 문을 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부,성자,성령 하나님께서 이 악물고 허벅지 꼬집으며 지켰던 율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사, 4차원의 영적 세계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 한 주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우리 삶에 풍성하게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특별히, 성령께서 그의 보증하심으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주 예수를 고백함이 비웃음과 핍박의 대상이 되는 이 시대, 성령의 보증하심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나의 연약함에 무너질 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요동칠 때, 거짓된 조소가 끈질기게 찾아올 때,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실 것입니다. 불에 달군 인을 가축에 치듯, 우리가 그의 것이라 지워질 수 없는 인을 치실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구합시다. 성령의 보증이 우리 안에 매일 인 쳐지도록, 날마다 성령님을 구합시다. 어떠한 박해와 핍박에서도 우리가 두렵지 않도록 주장하시는 성령님. 그의 충만함으로 오늘을 승리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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