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사


에베소서 1: 1~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018년, 에베소서 여정의 시작

하나님을 아는 깊은 자리로 나오라2018년을 시작하며, 주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혜’를 구하는 것, 그리고 ‘생기를 대언하라’는 격려이자 요청입니다. 어쩌면 이는 한 교회만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교회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더 아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하는 바울의 기도가, 이 시대 많은 교회들의 상황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에 부어졌던 주님의 은혜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어느 민족보다 헌신적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이 땅의 교회들은 세계 50개의 대형교회 순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만큼 성장한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지나간 열심과 열정을 격려하시며 또 다른 도전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더 깊은 은혜의 자리로 나오라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아득한 혼란 속에서도 능력으로 역사하는 진리를 소유해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황량한 땅도 소성케 하는 생기를 대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른 뼈와 같은 이 나라의 오늘, 교회만이 생기가 불어오게 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이 모든 주님의 격려와 도전 안에서 에베소서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언제까지가 될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올 한 해 동안은 하나님을 아는 깊이로 우리를 초청하는 이 말씀을 매주 마음에 새겨보려 합니다. 어둠이 밀려오는 이 때,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우리를 굳건히 무장하실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이제 열릴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며, 내면 깊은 곳까지 진리를 심길 축원합니다

위대한 인사 –에베소서 서신을 받는 자들을 향한 바울의 마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뻔한 편지글의 형식에 따라 시작되는 듯한 본문을 읽으며, 먼저 주목할 바가 있습니다. 에베소서를 여는 이 흔해 보이는 인사가 사실 위대한 인사라는 점입니다. 바울의 서신들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각기 다른 호칭과 인사들로 시작됩니다. 글을 쓰는 순간부터, 바울은 교회들을 향한 분명한 그 마음들을 정해진 의도 안에서 써내려 가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인사가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창세 전에 예정된 아버지의 계획과 만물을 충만케 하는 교회의 본모습들로 에베소서 1장을 채웠습니다. 바울이 전하고 싶던 놀랍고도 위대한 하늘의 비밀들이 에베소 교회를 향한 인사에서부터 풀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한 이 확신과 감격안에서 의도적으로 에베소 교회를 두 가지의 지칭으로 불러 인사합니다. 바로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상황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됨의 이해 바울이 인사를 전하며 의도적으로 부른 에베소 교회의 호칭,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은 결국 바울이 정의하는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본문을 읽다보면 이 두 번의 부름은 같은 무리의 사람들을 두 번 강조해서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각기 다른 두 무리의 사람들을 부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분명 서로 다른 두 무리입니다. 그러나 결국 한 교회를 말하기도 합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는 두 무리의 갈등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의 불화입니다. 바울은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2:11~12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바울은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라는 표현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19절에서 그러한 이방인이 이제는 유대인과 동일한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에베소 교회안의 이 두 무리가 빚어내는 갈등의 상황을 알고 있는 바울은 따로, 그러나 결국 하나로 이들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먼저가 ‘성도’입니다. 이는 택함받은 백성, 구별된 백성, 즉 유대인들을 칭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가 있습니다. 이들이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없던 민족이었으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약속을 얻은 자들입니다. 바울은 이들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를 고백함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를 고백한다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가 창세 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인사의 결론, 즉 우리가 기억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성도이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인 –첫째,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 우리가 기억할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호칭, 성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자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시작한 아브라함을 봅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구별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브라함 한 사람만의 구원을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셨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을 택하사, 그들로 인해 열방이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택함받은 자들입니다. 성도, 곧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택하신 자이자, 복의 근원이며, 축복의 통로입니다. 믿음이 없는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 사이에 둘러싸인 분이 있습니까? 믿지 않는 가족들 사이에서 홀로 믿음의 씨름을 하는 분이 있습니까? 성도의 은총과 능력을 기억하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것들을 위해 택함받아, 또한 그를 흘려보내는 권세를 받은 자입니다. 창세전에 예정된 이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합시다. 어떠한 상황에도 이 땅에 속한 무리와 같아질 수 없는 이유,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불러내신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둘째, 신실하게 정체성과 부르심을 살아내는 자 바울이 성도에 이어 두 번째로 말하였듯, 그리스도인은 또한 신실한 자입니다. 이는 자칫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신실함은 일반적인 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적적이고 윤리적으로 온전히 행함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닙니다. 엡2:10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자란 창조의 목적을 아는 자, 부르심을 아는 자, 그래서 그를 살아내는 자입니다. 에베소서가 말하는 선한 일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행동하는 착함이 아니란 점을 기억합시다. 바울이 말하는 신실한 자는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삶의 이유와 목적을 발견하고 그를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과 그 뜻대로 세워진 교회를 알고, 부르심을 함께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이 한 주간,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더 깊게 묵상합시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성도이자, 하늘에 속한 정체성과 부르심을 따라 사는 신실한 자. 이것이 세상 앞에 당당히 서야 할 우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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