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 목숨 걸고 사수할 것 2

2017-11-13

 

 요한복음 12:1~8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집 안을 가득 채운 향유의 향처럼, 주의 임재를 느끼고 경험합시다.
지난 시간, 우리는 마리아의 특별한 예배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위해 베푼 잔치에서, 마리아가 옥합을 가져와 밀봉된 그 마개를 열고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십자가를 앞두신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던 마지막 잔치의 날, 마리아의 이 특별한 예배로 인해 집 안은 향유의 향으로 가득 하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나,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이 향기가 바로 주님의 임재와 같습니다. 임재는 영 뿐 아니라 혼과 육을 가진 우리가 초월적이신 하나님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이 임재의 장면들을 보이며, 또한 임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개역개정판이 등장하면서 살후1:9, 대상16:27, 유다서 1:24등과 같이, ‘임재’가 ‘영광’이나 ‘그’등의 표현 안에 함축되어 많은 부분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임재는 성령으로 주를 따르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알며, 사수해야 할 중요한 주제입니다. 구약 뿐 아니라 신약의 여러 저자들은 ‘내 육체가 주를 사모합니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합니다’와 같은 구체적인 표현들로, 우리의 영을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포함해 모든 혼적, 육적 영역에도 임하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7이 말하듯,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며 항상 함께 하시는 성령님은 또한, 우리로 당신을 느끼고 경험하게 하십니다. 언제든 죄를 질 준비가 되어있는 불완전한 육을 가진 우리가 완전한 존재이신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오늘도 우리를 안아주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손을 잡아주시며 우리의 육체와 감정과 의지 영역에도 당신을 나타내십니다. 

 

주님의 임재와 혼적 작용과의 분간의 기준에 영광이 있습니다.
완전한 존재이신 하나님께서 육과 혼의 한계를 가진 우리가 당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가오시는 임재. 우리의 육체와 감정을 만지심으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하시는 이 임재는, 그렇기에 때로 감격이나 감동과 헷갈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콘서트장 무대에서부터 화려한 조명과 함께 울려퍼지는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마음이 따듯해짐을 느끼기도 하고, 새로운 의지를 다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작용들은 임재가 아닙니다. 중세 카톨릭 성당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종교의 옷에 가려지며, 반짝이는 스테인글라스의 화려함과 성직자들의 호화찬란한 옷차림과 웅장한 악기 소리들이 주님의 임재를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했던 베드로의 선포는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대신 은과 금만 남게 된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헷갈림을 경계하여, 다양하고 깊은 감정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사랑하는 것을 금하기도 했습니다. 육체와 혼을 통해 느끼는 하나님의 만지심을 ‘임재’라 표현하기 위해,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감정적 동요와 자극에 의한 거짓 임재에 속지 않길 축원합니다. 거짓 임재는 어느 시점에 이르면 더 이상 감격스럽지 않을뿐더러,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더 곤고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임재는 날마다 새롭습니다. 그리고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것은 임재가 주님의 영광과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자, 그의 성품의 나타남이자, 그 분 자체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영광이었습니다. 육을 가진 그 누구도 볼 수 없던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가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의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져야 함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체험, 신령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예배의 요소에는 진리의 말씀인 진정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의 예배에는 이 영광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론 어쩔 바가 없는 오빠의 죽음을 본 마리아는, 또한 죽음을 정복하신 하나님의 본체를 보았습니다. 마리아의 눈에 영광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영광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도록 임재하십니다. 죄의 바이러스로 오염된 육이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고 갈망할 수 있도록 임재하십니다. 순간적일뿐더러 결국 우리를 더 메마르게 하는 혼적 자극이 아닌, 영광의 임재를 경험합시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볼 영광을, 오늘 이 땅에서 임재로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임재 안에서 주님과 연결되지 않는 자는 마른 뼈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임재를 사수해야 합니다. 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할 뿐 아니라, 불완전한 육체로 사는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실재를 경험하는 임재가 필요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곳곳에서 그의 육체와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함을 노래하며, 전인적 임재를 구했습니다. 성령의 시대를 사는 오늘 우리의 예배에 이 임재가 더욱 필요합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기 위해, 간사한 우리의 감정과 연약한 육체 위에 주의 임재가 덮이기를 구해야 합니다. 에스겔 37장을 봅시다. 에스겔이 보는 마른 뼈들은 실제 시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날마다 양과 소를 잡으며 종교의식을 드리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영광을 잊고 임재를 잃은 이스라엘은 마른 뼈와 같을 뿐입니다. 주님은 신령과 진정이 없이 드려지는 예배를 그만 멈추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만지심이 없다면,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광을 바라보는 감각과 소망을 잃은 마른 뼈와 같이 됩니다. 그리고 이 갈급함을 육과 혼의 소욕들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임재를 대체한 거짓 임재들에 중독되기 시작합니다. 감사패를 늘어놓고, 지나간 업적들로 인생을 자랑스럽게 보이려는 자가 그러할 것입니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몇 번이고 얼굴을 고쳐서, 외모로 칭찬받는 것을 즐거움 삼는 자가 그러합니다. 영광을 잊지 않는 성도되길 축원합니다. 그 어느 것에도 임재를 빼앗기지 않길 축원합니다. 우리의 예배에 항상 임재가 있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옥합을 깨서라도 반드시 취해야 할 이 임재를 날마다 사수합시다.

 

주의 임재가 있는 곳, 에덴을 갈망합시다.
인류는 끊임없이 에덴을 그리워해 왔습니다. 수많은 이념과 정책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부단히 애써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꿈꾸는 천국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구하는 천국은 무엇입니까? 창세기의 에덴을 봅니다.  에덴은 동 편이나 서 편으로 나뉘어진 특정한 지리적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히브리 문화 안에서 표현된 에덴은 열린 하늘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이 우리와 함께 함을 의미합니다. 바로 임재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곧 에덴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그 곳이 에덴입니다. 우리는 진정, 임재 안에서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염려와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이 흔들 수 없는 기쁨으로 인해,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일어나 전진하게 됩니다. 8년 동안, 우리는 주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기도의 집으로 지역과 열방을 섬겨왔습니다. 멈추지 않는 우리의 소리가 마른 땅에 임재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마른 뼈들을 군대로 서게 하는 생기가 불어오게 합니다. 이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은혜가 계속해서 부어지길 원합니다. 영광을 바라보며 임재를 나르는 우리의 사명을 충성되이 지키며 더 큰 주님의 은혜를 경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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