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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강해 24 <근원적 세가지 필요 3>

마태복음 6:11-13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용서는 빚을 탕감 받는 은혜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본질적 기도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마6:33은 염려함 없이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로 달려가게 하는 격려와 위로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과 우리가 애쓰고 힘쓰며 살아내는 오늘의 이유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것일 때, 하늘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으로 우리가 영원한 그의 나라에 속한 자임을 잊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마6:9~10절과 11~13절로 나누어 간구하심으로 성도가 기도할 본을 보이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나라가 임하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구하는 본질적인 기도로 나아갈 때, 구하지 않아도 하늘의 아버지께서 주시나, 그럼에도 우리가 기도할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세가지 필요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로 지난 시간 나누었던 일용할 양식, 곧 공급에 이어 오늘 나눌 절대적 필요의 기도는 용서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한 주님은 이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간구하십니다. 이는 빚을 탕감해 달라는 원어로 기록되었는데 즉, 이를 원문으로 보자면 “우리가 우리에게 빚 지은 자를 탕감해 준 것 같이 우리 역시 탕감해” 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빚을 갚지 못한 자들이 노예가 되는 악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고리대금하는 것이 악하다 하였습니다. 높은 이자와 그로 인해 빚을 갚지 못할 때 노예가 되어버리는 당시 문화 안에서, 빚을 탕감해 달라는 주님의 기도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절박할 뿐 아니라 큰 믿음이 요구되는 도전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주기도문의 용서의 기도는 빚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구함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성품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신 이유이자 십자가로 받은 권리입니다.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이 모든 억압과 눌림에서 자유하길 원하십니다. 재정의 문제이든, 관계의 문제이든, 치유의 문제이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자유가 필요한 분들이 계십니까? 주님과 같이 용서를 기도할 때, 우리를 묶고 있던 결박들이 끊어지며 하나님의 나라로 존재하는 자유가 임할 것을 믿습니다.

<용서는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이 순종할 하나님 나라의 명령입니다.>

이제 우리는 진지한 질문과 대면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 기도하신 오늘 본문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먼저 용서함을 전제 조건으로 한 기도라면,만약 우리가 용서하지 않았을 때 우리 역시 용서 받지 못한다는 것인가? 라는 물음입니다. 이에 어떤 이들은 십자가의 은혜를 주장하며 용서는 선택의 문제일 뿐, 이 모든 말씀이 비유라 합니다. 또 한 편에서는 용서를 율법의 문제로써 강조하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용서는 비유가 아닌 구원받은 성도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신앙의 수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 왕이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인이 순종할 바 인 것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예수님은 구약 시대의 율법을 산상수훈의 선포로 온전케 하시며, 우리로 바로 오늘, 실존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며 이 땅위에 그의 나라가 침노케 하셨습니다. 마18:23~35의 빚을 탕감 받은 자의 비유를 기억합시다. 만 달란트를 빚진 자가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빚을 갚게 하라 말한 주인에게 엎드려 빌었을 때, 그는 다만 긍휼히 여김받음으로 빚을 탕감받을 수 있었습니다. 용서함 받은 그가 그 은혜를 함께 나누기는커녕, 자신에게 단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옥에 가두었을 때,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주었던 주인은 그를 다시 옥졸들에게 넘기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맺으시며 다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용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유케 하는 해방이자, 거듭남의 증거와 같이 구원과 직결되는 연장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로 용서하며 용서받기를 절대적인 필요로 간구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과 이성은 용서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떻게 죄 사함 받았는가를 처절하게 아는 자, 바로 심령이 파탄나고 가난한 자가 용서할 수 있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의 음행중에 잡힌 여인을 봅니다. 본문 6절이 말하듯,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어쩌면 희생양과 같이 여자를 끌어들인 사건이었습니다. 율법에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묻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리를 떠나고 여인과 단 둘이 남았을 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우리 모두는 이길 수 없는 죄로 인해 고통받다가, 오직 은혜로 이 모든 죄의 값을 탕감받은 사람일 뿐 입니다. 우리가 받은 용서는 윤리적, 도덕적 차원의 죄가 아닌 창조주가 죽음을 통과함으로 받은 근원적 죄로부터의 자유이자 하늘에서 결정된 영원하고 가장 위대한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어떠한 것들도 용서함으로 끊어내고 자유케 됩시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서의 문제 앞에서 망설이게 됩니다. 내가 당한 억울함과 수치를 당신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한 사람일 뿐인 손양원 목사님은 그의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였습니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두 아들을 죽인 자를 양아들 삼기까지 용서한 것입니다. 독일의 코리 텐 붐 여사 역시 용서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그녀는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리 텐 붐 여사는 말 그대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상황에 마주하게 됩니다. 누구보다 악랄하게 그녀를 모욕하고 고문하였던 간수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악수를 청한 것입니다.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다고, 그를 용서할 능력이 없다고 얼어붙은 채 기도하던 그녀에게 주님은 “나는 침 뱉음과 채찍질과 모든 조롱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려서 용서했다” 는 음성과 함께 용서할 힘을 주셨다고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의 손을 잡았을 때, 코리 여사는 하늘에서만 내려올 수 있는 평안과 위로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하늘의 아버지는 우리가 모든 것에서 자유케 되길 원하십니다. 용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상처로부터, 영적 억압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비밀이며 능력입니다. 이제 2016년을 마무리하며 남은 2주동안,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나를 묶고 있는 사건이나 나를 매고 있는 자는 없는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그 어떤 상처나 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하게 하나님의 나라로 달려가도록 용서의 능력을 간구합시다. 우리가 용서함 받았듯 우리가 또한 용서할 때, 모든 것을 이기는 하나님 나라의 위로와 평강이 우리의 소유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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