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23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2016-12-11

 

마태복음 6:11-13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리스도인이 이 땅을 살아내며 세상을 이기는 법, 소금과 빛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본을 보이며 가르쳐 주신 기도를 묵상하며 산상수훈의 마태복음 6장에 머물고 있는 오늘, 본문 11~13절의 일용할 양식을 나누면서 먼저 다시 되짚어 보기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께서 산상수훈을 시작하시며 첫 선포로 말씀하신 8복입니다. 8복은 몇 가지를 골라 선택하거나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연 우리의 걸음이 지성소의 보좌에 이르기까지 한 계단씩 걸어 올라가는 우리의 여정이며, 우리가 이루어가는 정체성이자, 우리가 살아낼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의 복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 된 우리의 이 모든 삶과 정체성을 ‘소금’과 ‘빛’이란 두 단어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녹아서 사라지며 짠 맛을 내는 소금과 드러내어 어둠을 밝히는 빛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체성이자 우리가 세상 가운데 존재할 방법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주께서 택한 죽음일 뿐 아니라, 또한 부활임을 기억합시다.태초에 계시며 만물을 지으신 주님은 영원의 존재이시면서, 그 스스로 우리를 위해 죽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와 같이 살아낼 소금의 삶입니다. 모든 능력이 있으나 어린 양과 같이 잠잠히 피 흘리신 예수님처럼, 죽기를 결정하여 오른편 뺨을 친 자에게 왼편도 돌려 댐이 내가 녹아져 사라져야 비로소 드러나는 소금의 삶이자 소금만이 행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8복의 1~4복이 이러한 소금의 정체성을 말하고 있다면, 이어지는 5~8복은 우리가 또한 빛으로 부르심 받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십자가는 마귀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죽음의 능력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모든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입니다. 어둠을 밝히고 내어 쫓음으로 드러나는 빛이 우리의 또 다른 정체성이자 능력인 것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은 일을 착한 일이라 말하고 있습니다.오늘 이 땅의 신음 가운데, 원수의 결박과 저주로 인한 고통의 소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사망을 이기신 주님의 권세를 받아, 그와 같이 빛이 되어 어둠을 내어 쫓는 자로 서야 합니다. 내가 죽어 소금처럼 녹아질 뿐 아니라,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이 두 가지의 부르심을 모두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바로 빛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능력이자 모습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어둠이 떠나가며 죄의 저주를 끊어내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나라의 교회가 도덕적이나 능력은 없는 종교로 치부 받지 않게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는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며 그의 뜻을 이루는 교회의 강력입니다.

  

<주님이 기도하신 일용할 양식은 육의 양식이며 또한 영의 양식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지난 시간 기도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을 압축한 마6:33 말씀과 같이, 일용할 양식은 본질적인 기도를 할 때 절로 더해지는 ‘이 모든 것’에 속하는 것임을 나누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주께서 이를 구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이미 아시는 아버지께서 우리가 본질적 기도를 할 때 이 모든 것을 채우실 것이지만, 우리가 여전히 구할 수 있는 삶의 절대적인 필요 세 가지 중 하나가 바로 일용할 양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구하신 ‘일용할 양식’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기도일까요?이는 육의 양식 뿐 아니라 또한 영의 양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먼저 우리를 먹이시며 우리의 필요에 응답하는 주님의 방법이 ‘단 한 번’ 이 아닌 ‘매일’ 주께 나아오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주님은 쌓아둔 것으로 필요를 채우는 삶이 아니라, 매일 주께 구하고 받음으로 주님의 주권을 날마다 고백하는 삶, 하늘에 속한 자의 삶을 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용할 양식’을 구하신 주님의 기도가 삶의 필요를 구하는 육의 양식을 구함보다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영적 양식을 구함에 있습니다. 신8:3은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신령한 음식을 주신 이유는 육을 먹이시는 것 뿐 아니라, 하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삶의 필요를 넘어 하늘에 뿌리를 둔 자가 그가 속한 하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영적 양식을 기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할 일용할 양식, 말씀과 매일의 은혜와 주님의 음성입니다.>

우리가 구할 영적 양식의 먼저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암8:11에서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알며 그의 말씀을 듣는 일이 멈추어 지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우리는 엡1:17~19의 말씀과 같이 계속해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해 달라 부탁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이 교회의 리더들이 주님의 말씀을 받으며 그를 깨닫게 되길 중보해주십시오. 또한 우리 모두가 내가 만들어 낸 신조와 믿음이 아닌, 말씀이 신학이 된 자로 서길 기도합시다. 말씀은 귀에 걸면 귀걸이,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닙니다. 감정과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달라지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진리의 말씀을 가진 자, 시대적인 계시와 주님의 마음을 아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두번째로 우리가 구해야 할 영적 양식은 새로운 은혜입니다. 신앙에는 여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정을 따라 새로운 시즌을 맞이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한다면서 이전의 은혜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는 지난 시간에 매여있는 자 일 뿐입니다. 어제를 추억함이 주님과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전통화 된 신앙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제의 은혜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봅시다. 주께서 아침마다 하늘의 만나를 주셨듯이,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매일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마지막으로 우리가 구할 영적 양식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계시 외의 또 다른 음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과 동행하기 위해, 그의 음성을 듣길 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로고스의 말씀보다, 성령으로 풀어진 레마의 말씀을 더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는 에베소서 6장의‘말씀’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는 요한복음 17장의 ‘말’도 모두 로고스가 아닌 레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삶을 위해, 우리는 기록된 말씀인 로고스가 성령을 통하여 인격적으로 들려진 레마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는 분이시지만, 모든 일에 간섭하고 참견하듯 떠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한 영적 감동을 주님으로 착각할 때 우리는 큰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 주님의 음성은 나 혼자 듣는 것이 아니라, 몸이 함께 들을 때 안전합니다. 나의 가족과 셀과 리더들이 함께 기도하며, 한 영 안에서 듣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도하신 일용할 양식을 우리도 주님과 같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더 깊이 뿌리 내리며, 우리의 영이 깨어 성령과 동행하게 되는 은혜가 있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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