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19 <땅의 회복>

2016-10-30

 

마태복음 6:9-10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구별된 이 땅의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곧 진리 안에서 진리를 사수하는 자로 산다는 것은 이를 대적하는 세상과의 영적 전쟁이 있음을 말합니다. 이 치열한 싸움 가운데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또한 그를 이루어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하늘을 움직이는 우리의 기도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주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삶에 대한 우리의 많은 고민과 결정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지 점검합시다. 하늘을 매고 여는 열쇠를 받은 교회로 부르심 받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의 뜻을 위해 구별될 때,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영광의 즐거움을 맛 볼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신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 바로 우리의 회복을 위함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1:10의 선포와 같이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통일하기 위해,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이사야 9:6의 말씀처럼 땅의 형상, 바로 흙으로 지음받은 한 아기로, 하나님의 한 아들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형상 안에서, 하늘과 땅이 만나, 온전히 그 뜻이 이루어진 유일한 존재되십니다. 이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간구하신 주님의 기도의 가장 결정적인 결론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하늘의 뜻은, 바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의 회복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언제나 우리가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를 끌어오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이 모든 이유가 우리의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이 말하듯, 우리는 본디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었으나, 예수님은 죽은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사, 그와 함께 하늘에 앉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기도하신 땅의 회복은 바로 우리의 회복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의 섭리와 역사의 중심에 바로 우리가 있습니다. 율법에 매여, 주께서 안식일에 행하신 치유가 옳지 않다고 말했던 자들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모로는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생명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원한 그의 나라에서, 영원한 그의 영광을 함께 누리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이 회복됨은 땅의 형상이 하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회복이 땅의 회복의 시작임을 기억합시다. 육을 가지고 땅의 삶을 사나, 동시에 영이 살아 하늘의 삶을 사는 우리의 회복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를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를 바라보며 우리도 주와 같이 하늘과 땅이 통합된 삶을 살아내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자가 영이 죽은 자입니다.>

우리는 앞서 십자가의 결론이 하늘과 땅이 연합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결국 복음의 결론은 땅에 속한 우리가 하늘에 속한 영으로 인도함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이 그의 아들된 우리안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수인 로마서의 8장은 이 영원한 하나님의 뜻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의인되어 이룬 구원의 결론입니다. 로마서 8장은 천당이나 지옥으로 십자가의 결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을 죽이고 영으로 사는 자가 산 자이지, 육을 따라 사는 자는 죽은 자 일 뿐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은 살아있습니까? 영이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영이 죽었다는 것은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을 알지도, 받지도 못한 자들도 영의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영은 양심을 움직이기도 하고, 직감을 따라 사물과 상황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이는 거듭나지 않은 자들에게도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겉모습을 통해서는 더더욱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더 많이 치중하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적으로 죽은 자는 바로 하나님과 분리된 자입니다. 영적 감각이 있고, 영적 활동을 할 수는 있으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가 되었을 때, 성경은 그를 죽었다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왕으로 고백하여 영접했다면, 그는 산 자입니다. 유일하신 하늘의 왕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고 초청할 때, 십자가의 역사가 죄로 인해 끊어졌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 연결시키며, 하늘의 아버지와 우리가 연결될 때 비로소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의인된 우리, 영이 살아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성령께서 생명되어 영 안에 거하실 때, 하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허물과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가 산 자 되었다면, 우리의 영이 살아 생명력을 갖기까지 어떤 일이,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요?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내가 다시 생명을 가지고 주께서 이룬 통합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말입니까? 로마서 8:3~14의 본문을 다시 살펴봅니다. 3~8절까지 육신과 분리된 영을 말하는 듯했던 본문은 9절로 넘어가며 하나님의 영, 곧 성령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육신을 죽이고 영을 따라 사는 삶에 대한 선포가 결국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살았다는 것과, 우리가 영을 따라 산다는 것의 공통점에 바로 성령님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이 유일하신 하나님이 들어와 거하시는 처소되기 때문입니다. 영은 오직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귀신은 우리의 감정과 생각과 의지와 신경과 육신에 침범할 뿐입니다. 우리의 영은 주님께서 거하시는 지성소의 좌소와 같습니다. 마치 빈 그릇처럼 있던 우리의 영 안에 성령께서 들어와 좌정하실 때, 비로소 우리의 영이 그와 더불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 안에 하나님께서 계십니까? 빈 공간이었던 우리의 영 안에 성령께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더불어 들어오셨습니까? 성령으로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산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영이 성령으로 더불어 주 되신 그의 음성을 들으며, 반응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속사람 영이 곧 성령님입니다. 성령과 우리의 영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육체가 이끄는 대로, 지식과 감정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던 우리의 삶이, 영에 이끌리기 시작합니다. 이미 완성된 하늘이 우리 안에 들어왔을 때, 이를 따라 사는 삶이 시작되어집니다. 이 삶의 능력이 성령충만입니다. 성령께서 그가 거하시는 우리의 영을 넘어, 지, 정, 의, 육체에 가득 흘러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속사람이 살아난 바울은 초등학문을 벗으라 말하였습니다. 이제 성령의 충만함으로, 혼적인 이성이나 지식, 의지를 넘어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되길 축원합니다. 성령과 함께 그의 인도함을 받는 아들로 설 때, 땅의 형상이 하늘의 형상으로 회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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