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We)-3

2016-8-08

 

마태복음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코이노니아는 “나”에서 “우리”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교회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강론하시던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 가르쳐주신 기도, 곧 주님의 나라를 여는 위대한 기도를 하기 위해 요구되는 전제 조건 중 하나는 “나” 에서 “우리” 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교회의 신비입니다. 이 비밀을 이해하고 취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교통, 교제, 흘려보냄, 나눔 등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특별히 요한복음 15장,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의 세 본문은 교회가 이루어야 하는 코이노니아가 무엇이며, 어떻게 코이노니아를 이룰 수 있는지, 흘려보냄, 연합, 확장의 키워드로 말하고 있습니다. 코이노니아는 마치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마다 절로 열매 맺듯이, 생명적 유기체로써 아버지께서 거두시는 열매를 맺는 영적 삼투압 현상입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주께 속하여 뿌리에서 줄기로 가지가 영양을 공급받듯이, 코이노니아를 이루어 그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절로 열매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코이노니아는 손과 눈과 코가 몸의 각 부분으로, 각 기능을 하여 한 몸을 이루듯, 연합으로 일체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혼합이 아닌 연합으로 이루어 짐을 기억합시다. 각 지체가 가진 색깔이 모두 섞여 회색이나 갈색으로 퇴색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분명한 색이 아름다운 정렬을 맞추어 서로의 빛 되는 것입니다. 몸을 이루는 각 부분이 되어, 나의 부르심이 우리의 부르심으로 하나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히 그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코이노니아는 성장하고 확장되는 생명의 네트워크입니다. 마디마다 서로 연결된 코이노니아 안에서 우리는 뻗어나가는 생명으로 전진하게 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코이노니아는 성령으로 연결된 핏줄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신진대사를 이루고 움직이는 작용이 바로 코이노니아인 것입니다. 이 신비안에서 열매 맺고, 성장하며, 부르심을 이룰 수 있습니다. 코이노니아 안에서 우리는 온전해 집니다.

 

 수직적 코이노니아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지난 시간 우리 삶에서 실제로 코이노니아를 경험하고 누리는 답으로써 교회의 가족됨에 대해 나누었다면, 오늘은 또 다른 결론으로 영광의 코이노니아, 곧 신령한 코이노니아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진정한 코이노니아 안에서 성도의 삶을 살아내며 그를 누리기 위해 가장 먼저 열려야 하는 것이 수직적 코이노니아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인 하나님과 육체를 가진 우리가 소통되기 시작하며 그와 함께 하게 되는 역사, 바로 성령세례의 문이 열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와 그저 교회를 오다니던 자로 나뉘게 되는 기준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의 부어짐을 경험한 자들은 구원을 넘어 주님과 소통하며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는 코이노니아를 누리게 됩니다. 물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구원의 사건 자체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가 성령에 온전히 잠기는 현상인 성령세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나” 에서 출발한 구원의 여정은 “우리” 로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 성령세례가 필요합니다. 행2:1~4에서 보듯,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들에게 또 다시 위로부터 부어지는 성령세례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음을 봅니다. “나”에서 시작된 구원에 머물러 “우리” 가 되지 못할 때, 꺾이어진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교회의 어떤 면이나 목회자의 연약함으로 인해 아파할지언정 주님을 부인하고 떠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은혜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됨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말라지는 가지와 같이 어느 날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의 본질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코이노니아를 이루며 동행하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하나님 그 분께서 코이노니아로 존재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분명한 세 분 하나님께서 또한 온전한 한 분으로 코이노니아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말씀하셨듯이, 아버지의 자녀이며 백성된 우리의 시작은 “우리” 로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요한복음 17장의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말씀하신 예수님의 기도 같이 “우리” 되어 온전해 질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고백한 당신의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움직이는 “우리” 되기 위해, 성령세례가 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구해야 하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의 전인적인 부어짐인 성령세례가 현재형으로 오늘도 이루어지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우리 삶에 성령의 고갈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수직적 코이노니아의 문이 열리고,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는 거룩한 교통이 풀어질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그와 함께 걷는 은혜가 충만할 것입니다.

 

 수평적 코이노니아 –성령으로 연결되어 각 지체가 교통합니다.

성령이 부어지며 성령충만을 유지하여 수직적 코이노니아안에 거하는 자들은 이제 수평적 코이노니아로 들어가게 됩니다. 몸을 이룬 교회의 각 지체들이 성령으로 연결되어 하나되는 코이노니아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영적 교통과 삶의 교통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흔히 “임파테이션” 이라 하는 영적 흘러감과 서로의 삶이 실제적으로 연결되어 주고 받아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봅시다. 출신 성분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를 뿐더러 정치적으로는 서로를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정적의 위치에 있던 그들은 모든 상황을 초월해서 진정한 사랑의 관계 안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코이노니아를 이룰 때 가능한 것입니다. 많은 면에서 서로 다르고, 때로는 정적의 위치에서 바라봐야 하는 사람이더라도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이룰 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나오미와 룻의 관계 역시 그러했습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이방인의 몸으로 따라 나서며 그의 말에 순종함으로 함께 지낼 수 있던 것은 룻이 코이노니아의 능력 안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때로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방언으로 다급하게 기도가 나왔던 셀 목자들이, 나중에 셀 가족 중 위험한 상황이 닥쳤던 누군가를 중보했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수평적 코이노니아의 실제적 작용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의 상황이나 셀의 상황을 넘어서, 몸 된 교회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 역시 수평적 코이노니아에 머물렀을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영적 작용입니다. 오늘 우리안에 영적 경화 증상이 있는 자들이 있다면, 깨끗해 지길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성령의 핏줄로 연결되어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한 영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영적 교통과 삶의 교통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이루어 집니다. 이 교회를 향해 주께서 부으시는 영적 흘러감을 누리며, 삶의 교통으로 서로 하나되어 승리하는 은혜가 부어지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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