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도하라 1

마6:7~9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노아의 때와 같은 오늘, 기도는 우리를 깨우는 능력입니다. 주님은 세상 끝 날의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오심이 노아의 때와 같다 하셨습니다.(마24) 비를 본 적도 없는 세대들 가운데서 120년의 시간동안 방주를 짓는 것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만한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운 오늘, 노아의 때와 같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시세를 알며 분별하는 은혜가 더욱 필요합니다. 주님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멸함 받기까지 깨닫지 못했다 하셨습니다. 이는 일상에 매여 영적인 것들을 놓치는 현상입니다. 마지막 날의 영성이자 시스템인 바벨론에 취한 자들이 영혼을 사고 팔기까지 때를 깨닫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바벨론의 향취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 퍼져나가 콧속까지 냄새가 배어 익숙해진 것이 될 것입니다. 그때 무디어져 취한 자들이 시대에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의 표면적인 현상이 일상에 매여 영적 삶을 놓치는 것이라면, 그 이면의 또 다른 특징은 양심이 마비되며 선악의 기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는 한 두 사람의 일이 아닌 시대적인 변화가 될 것입니다. 말씀이 아닌, 힘있는 자들이 외치는 소리와 죄에서 돌이키길 원하지 않는 무리가 옹호하는 것들이 선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오늘 이 땅의 동성애 문제 역시 그렇습니다. 말씀의 기준을 무너뜨리고 인권의 문제로 동성애를 지지하는 일들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이제 교회는 이 세대에 스며드는 바벨론의 향에 취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할 때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세상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게 하는 능력이 기도에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8장의 과부의 비유로 인자가 올 때에 찾으시는 믿음, 곧 밤낮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산상수훈의 절반을 차지하여 말씀하신 기도에 대해 나누며, 기도를 알 뿐 아니라 기도하는 은혜가 더욱 부어지길 축원합니다.

기도에는 상이 있습니다. -성도의 부르심이며 사명인 기도 지난 주 산상수훈 6장에 들어서며 우리는 기도를 지속하지 못할 뿐더러 깊은 기도의 단계로 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풀어내는 위대한 기도가 잘못된 철학과 태도로 인해 종교적인 기도와 미신적인 기도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람의 이목에 중심이 쏠려 주님과의 관계는 없고, 형식적이고 인본주의적으로 하는 기도는 종교적 기도입니다. 또한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반복하는 기복적이고 주술적인 기도는 미신적인 기도입니다. 열방에 기도의 영감을 주었던 이 나라가 기도의 능력을 잃어 가는 오늘, 우리는 종교적 기도와 미신적 기도를 버리고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기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역사를 바꾸고, 시대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때를 당길 수 있는 하늘을 여는 기도를 자기만족과 자기성찰이나 먹는 것을 구하는 도구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당신의 생애 가운데 전도보다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기도를 알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삶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우리의 기도가 이방인의 기도와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며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말합니다.

성도의 기도의 목적은 나의 필요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응답 이상의 목적이 있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을 받기 위해 행하는 이방인의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주님의 케리그마안에서 우리에게 명령된 기도는 성도의 부르심이고, 사명이며, 헌신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문제의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의 부르심이자 사명이며 우리가 하늘의 상을 받게 되는 헌신의 척도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도에는 응답이 아닌 상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먹는 것과 입는 것에 대한 해결이 아닌, 그의 나라와 의를 이룬 것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가 헌신해야 할 자리에 기도가 있음을 기억합시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영적 공동체, 교회와 성도는 하늘을 여는 기도로 주님의 상을 받습니다

기도는 내가 아닌 하나님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도가 나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는 것임을 말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 그를 이루어드리는 우리의 기도에 고마워하십니다. 당신께서 뜻하시고 원하시는 일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 질 때, 그로 인해 갚아주고 보상하겠다 말씀하십니다. 때로 주님의 필요를 채우는 기도가 좁은 길을 택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를 창조하시고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필요를 우리에게 맡기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손해보고 손실될 위험 부담들을 감수하고라도 그 분의 필요를 채워 드릴 때, 주께서 우리를 보상하시고 갚으실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성장하며 성숙하게 합니다. 앞서 말한 듯, 기도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응답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이며 그가 갚아주시고 보상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를 통해 더 깊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영적 공동체인 교회가 기도할 때, 주님이 운행하시는 신령한 영적 세계가 열리며 더 깊은 차원으로 주님을 보고 만나는 경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도에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그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는 성장과 성숙의 비밀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영은 깨어나며 살아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영과 영으로 주님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 계속하여 회복되며 성장하고 성숙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의 기도의 본, 원리, 내용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주님은 9절로 “이렇게 기도하라” 말씀하시며 우리가 기도해야 할 모범과 원리와 내용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가 여전히 고난 중심에 머무르며 깊어지지 못하고, 그렇기에 멈추어진 이유는 우리가 주님이 보여주신 기도의 본과 원리와 내용을 따라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몇 주에 걸쳐 주님의 기도에 대해 나눌 때 기도의 영과 계시와 갈망이 새롭게 부어지길 축원합니다. 우리의 영이 살아나며, 영계를 움직이고, 영적 삶을 살아내는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기도로 돌이켜 기도할 때, 은밀한 중에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성장하여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와 함께 동행하는 신앙 생활의 본질이 회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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