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자의 자세와 철학

2016-5-07

 

 마태복음 6장 5~8절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영원한 승리의 기준이 되는 상상수훈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팔복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두 가지로 압축해 '소금과 빛'이 그리스도인의 핵심 정체성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소금의 의미도 분명히 우리의 삶에 존재해야하지만, 새롭게 살아나는 빛의 의미도 존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분명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돌을 옮기고 빛으로 나아오셨습니다.
숨겨지지 않고 높은 곳에 밝히 드러나야하는 것이 빛입니다.
우리가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여러 요소 중 말씀에서도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도에 대해 나눕니다.
앞으로 이 영광스러운 기도, 위대한 기도에 대한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통해 기도의 영이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대한민국과 기독교 쇠태기를 맞은 여러나라들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앙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을 버리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기도를 멈추는데 있습니다.
다음세대에게 전해줘야할 믿음의 유산 중 가장 중요한 유산이
'기도의 유산'임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기도'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심볼, 제자의 심볼입니다.
예수님이 끊임없이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를 못하는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말씀에서도 주님이 강조하십니다.
그것은 곧 기도의 '신학', '본질'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고, 잘못된 이해와 동기,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에는 바른 태도와 철학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지성(至誠), 종교, 미신으로 기도하면
불법의 기도가 된다는 것을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본인의 요구만을 반복적으로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는 미신적 기도와는 반대되는 말씀으로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할 줄 아신다" 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비본질적인 기도를 했었기 때문에 삶의 환경이 나아지면서 기도를 멈추게 되고,
그것이 신앙을 버리게 되는 결과까지 초래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내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만나는 1:1의 은밀한 기도를 해야합니다.
주님의 임재가 없는 기도는 무의미 함으로 일방적인 기도가 아닌 머무르며 기다리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는 말씀의 의미로
기도는 단순히 응답을 위한 것에서 넘어서서 부르심, 사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응답받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 되어선 안됩니다.

 

 

'기도의 신학' '기도의 본질'이 회복되어 우리 신앙의 삶에 다시금 기도의 불씨가 타올라
개인과 가문과 나라에 기도의 영이 임하여, 주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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